2013년 12월 30일 월요일

삶의 예술


"The Art of Living" by 'Rene Magritte'

1998년 삐삐Metalica와 Megadeath, 말달리자

1999년 X-JAPAN ZARD

2000년 동감러브레터, Daydream

2001년 Dream Theater 여행스케치

2002년 너의목소리가들려 네버엔딩스토리 그리고 오 필승 코리아

2003년 Rachmaninoff Piano Concert no. 3

2004년 Smashing Pumpkins그린마일테킬라

2005년 세남자와 세여자, Crazy hour 그리고 Friends rule all

2006년 Being John Malkovich Dr. House 그리고 Cardigans

2007년 Javaange JongensAmerican Spirit, and got so high 

2008년 사랑해 당신을과 담배여 안녕

2009년 Pat Metheny Tommy Emmanuel

2010년 I'm all about Norah Jones

2011년 Mr. Jazzie Jazzerson Classic

2012년 진짜 사나이 맛다시

2013년 호텔 맥주 그리고 찢어진 가죽가방

2014년 

한국과 패시브 하우스에 대한 짧은 고찰


"파시브 하우스 기본 개념" by 'Passivhausinstitut, Germany'

한국에 와서 패시브 하우스에 대해 좀 더 심도있는 공부를 하고 있다.
유럽형 패시브 하우스의 구조적, 디테일적 특징을
한국의 기후 환경을 고려, 발전시키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다.
패시브 하우스나 에너지 절감형 주택을 더 이상 미래형 주택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을 제외한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 신축되고 개축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건축을 배운 사람의 입장에서는 때 늦은 고민이라 스스로를 조금 더 채찍질한다.

너도나도 에너지 절감형 주택을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시대에
대한민국도 서너 발 늦은 감이 있지만 어쨌든 그에 맞춰 건축법을 개정한 모양이다.
개정의 골자는 대략,
이산화탄소 절감과 기후 변화에 대처하고자 한국은 2017년부터
신축되는 모든 건물을 대상으로 패시브 하우스 수준의 에너지 절감 설계와 기술을
요구하기로 했다고 한다, 정도로 요약 할 수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말이다.

현재 이렇다 할 패시브 하우스(또는 에너지 절감형 주택)을 찾아 볼 수 없는
사회 분위기나 현재 건축물의 설비 수준 및 건축주의 건축에 대한 의식으로 미루어
이는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식의 행정이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이 단열이나 결로에 대해 대응하는 수준은
석기시대 동굴 생활하던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동굴이 추우면 장작을 더 떼고,
동굴이 습하면 동굴 여기저기를 뚫어 환기 시킨다는 생각.
단열과 결로 부분에서의 하자는
건축 설계 단계에서부터 공정 모든 과정의 오류에서 비롯되는 종합적인 하자인것을
난로를 더 사거나, 곰팡이를 매번 닦아내거나, 무조건 적인 환기를 하거나,
단순히 1차원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대한민국 사람들을 어떻게 혼내야 할까.

실제로 이산화탄소가 지구 온도 상승의 직접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혹과 의구심들이 이는 상황에서(실제로 영국의 채널4나 독일의 몇몇 매체는
이산화탄소가 지구 온난화의 직접적 요인이 아니라 밝혔다고 하는데...)
이산화탄소 절감을 위한 노력들(물론 산업화를 거치면서 자연발생 그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배출 되었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이지만)이 적절한지에 대한 고민없이
소위 선진국의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은
대한민국이 여태껏 범해온 수많은 우를 또 다시 범하는 게 아닌지
걱정부터 앞선다.

이산화탄소의 절감을 떠나서 더 쾌적한 주거환경과 긍정적인 형태의 자연의 이용등
에너지 절감형 주택에 대한 고민은 미래 건축에 대한 고민임은 틀림이 없다.
나의 작은 고민이 있기 전부터 먼저 눈을 뜬 많은 석학들이
이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음에 나 역시 힘을 얻어 그들의 뒤를 따르고자
사무실에서 시키는 일도 요령껏 미룬 채 한국형 에너지 절감 주택을 고민하고 있다.
실제로 독일에서 건축가로 일하시는 홍도영 선생님의 여러가지 노력과 시도들은
건축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
건축이 자기표현적인 수단이 아니라는 점에 동의하는 모든 건축인들은
건축이 위대한 인간문명의 과거이며 현재이자 미래임을 주지해야 한다.
이는 사회적, 문명적 책임을 수반한다는 말과 일치하며
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흰 캔버스를 만드는 일 그 자체로 표현하고 싶다.

기본은 의식이다.
의식이 기본되지 않으면 어떠한 눈부신 결과도 가식이다.
의식이 기본되면 그 어떤 결과도 만들어 낼 수 있다.

패시브 하우스가 미래 한국의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설계방법과 디테일적인 특징, 시공법등은 한국의 기후환경에 맞춰
분명 많은 부분 변경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2013년 12월 24일 화요일

Finding and Believing


삶은 선택에 대한 책임의 연속으로 만들어진다.
그 긴 연속에서
행복을 노력하고 사랑을 찾고 돈을 벌고 가족을 만들고.

이 일련의 과정들에 아무래도 난 겁을 먹고 있었던 것 같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그랬다는 것 뿐.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그런다라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까.

삶에 겁을 먹거나,
책임에 겁을 먹거나,
사랑에 겁을 먹거나,
돈에 겁을 먹거나,
이런 모든 것에 한번 쯤 겁을 먹었다면,

넌 정말 잘 살아오고 있던거야.
누구보다, 혹은 누구처럼,
아주 잘 살고 있었던 거야.


"Finding and Believing" by 'Pat Metheny'



2013년 12월 14일 토요일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출퇴근길엔 꼭 라디오를 듣는다.
얼마만에 듣는 라디온지 모를 정도로 참 오래되었다.
이런저런 사연과 이런저런 노래들을 아무 생각없이 듣다보면
회사에 도착하고 집에 도착하고.
시간이 쉬이 흐르는 게 좋고 다른 이들의 소소한 일상을 듣는 게 좋다.

퇴근길에 박소현의 FM데이트(옛날엔 이런 이름이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에서
이상은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가 흘러 나왔다.
우와...내가 이 노래를 잊고 있었다니.
한국의 조니 미첼, 아니 그 이상으로 멋진 이상은.
상은 누나의 보석같은 앨범 공무도하가의 타이틀 곡, 공무도하가.

갓 중학교에 입학하던 즈음이었나,
담다디의 상큼함따위는 개에게나 던져 버린듯 도도하고 신비로운 모습으로
일본에서 뭉게뭉게 구름타고 건너온 상은이 누나.
그리고 속세의 중생들에게 슬쩍 던져준 전설의 화엄경, 공무도하가.
HOT가 좋니, 젝스키스가 좋니, SES가 예쁘니, 핑클이 예쁘니 하던 우리 귀에는
말 그대로 염불외는 노래가 아닐 수 없었더랬다.

다시 듣게 되었던 때가 2002년? 그 쯤이었지 아마.
누군가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효정이었나? 종선이었나?
걔네들이 잘불러서였을까, 아님 노래를 좀 들을 줄 아는 나이가 되어서였을까,
공무도하가는 진정 화엄의 경지로 나에게 깨달음을 던졌더랬다.
그래, 솔직히 깨달음이라기보다는 술기운을 깨움이 맞는말이겠다.
술기운이 사라지고 노래에 빠졌다. 이유없이 차분해지고 슬퍼졌다.
저 남자는 왜 물을 건넜을까? 저리도 걱정하는 여자를 두고서 물을 건너야 했을까?

노래는 꼭 들어야 할 때가 있다.
기쁠때와 슬플때와 좋을때와 싫을때와 누군가를 만났을때와 누군가와 헤어졌을때.
그러고보면,
내 인생의 중요한 만남과 가슴아픈 헤어짐에는 꼭 음악이 있다.


공무도하가 by 이상은
이 앨범의 모든 노래를 들어보길 권한다.






2013년 12월 9일 월요일

가죽 가방

그 동안 위태위태하던 가방이 옆구리가 단박에 터지며 수명을 다했다.
수명이야 몇 년전에 다한 걸 케이블타이로 엮고 꿰메고 해서 간신히 들고 다녔더랬다.
나는 정말 아껴쓴다고 아껴쓴건데
처음 마음과 같지 않게 함부로 쓰고 있었나보다.
가방은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넘어서면서도
내가 가장 필요할때 그 가방이 없으면 안될때 그러지 않아도 되는 걸 몇 년을 고맙게 버텨줬다.

이제야 가방이 ‘나 그동안 정말 힘들었어’하는 것이다. 가방에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
나는 꼭 뒤늦게 알아차린다.
무언가 상처받고 아프다 소리내야 알아채는 내가 나도 속상하다.
나는 정말 아껴주고 잘해주고 싶은데 상황과 여건이 날 항상 곤란하게 만든다.
그 곤란한 상황 역시 내가 감당해야 할 내 책임이라는 것도 알기에
오늘 옆구리가 터져버린 가방을 보고서도 또 고쳐써야지 하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내 유일한 가방-그래서 더 고생했는지 모른다-은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좀 더 편하고 자기가 가진 멋을 내면서 잘 지냈을 것이다.
나처럼 가방에다 노트북이며 사전이며, 이것저것 구겨넣고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가방이 얼마나 이쁜지, 보는 사람마다 예쁘다고 칭찬을 해주는 가방이었다.
내 자랑이자 내 사랑이었다.

지금도 고민 중이다.
한편으로는 가방을 이제 쉬게 해주자 싶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아직 고쳐서 쓸 수 있을 것 같아 몇 번이고 바라본다.
이번에 고쳐쓴다면 앞으로는 정말 아끼고 보살피며 쓰겠지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나는, 자신이 없다.
내가 고쳐쓰고 싶다고 한들 가방이 그걸 좋아할까. 가방은 이미 쉬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 마음을 참고참고참다가 이제야 이렇게 보여주는 게 아니었을까.

이기적으로만 살아온 나이기에 항상 이기적으로 생각하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다.

가방은 내가 아니더래도 누구한테나 사랑받을 수 있는 녀석이다.
나라서 이 정도 밖에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